가족 중 유일한 무주택자였던 남동생이 드디어 집을 샀다
'세종시 사는 동생에게'에서 잠깐 언급했던 내 친동생이다
(물론 내 동생은 세종시에 살지 않는다)
내가 어쩌다 '정부가 집값을 안 잡는 이유' 시리즈로
팔자에 없는 논객소리 듣기 이전에도 카페에 글을 여러 편 썼었는데
그중 많은 호응이 있었던 글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어릴적부터 살아온 주거환경에 대한 글이었다
내 동생은 (당연하지만) 나하고 같은 주거환경에서 살았다
산에서도 살았고 콘테이너에서도 살았고 쪽방에서도 살았고...
커서라도 좀 좋은 집에 살게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자영업자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돈은 모이지 않아서
동생은 마흔이 다되어가는 나이에
여태 좁아터진 빌라에 전세를 살고 있었다
나와 여동생은 각자 서울에서도 좋은 동네에 자가로 살고 있어서
녀석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 동생이 드디어 얼마 전 집을 샀다
있는 돈 없는 돈에 은행 대출에
누나 찬스까지 끌어모아 산 생애 첫 집은
갈현동에 있는 다 쓰러져가는 30년 넘은 연립주택이다
영끌을 해도 아파트를 살만한 돈은 안되니까
몸테크라도 해보자고
본인이 재개발 물건을 여러모로 알아보다가 산 것인데
나는 수없이 말하지만 투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정작 내 동생한테도 사라 말아라 말을 못해줬다
(그러니 제발 나한테 뭐 살까요 말까요 쪽지좀 안보내기 바란다
아는게 없어서 어차피 대답 못한다)
어쨌든 동생은 몇달 전 그렇게 계약을 하고
며칠전 드디어 잔금을 치르고 등기를 치고 이사를 했다
이삿날 집 꼬라지를 찍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아무리 재개발할 집이라지만 세상에나 말이 안나왔다
낡은 것도 낡은 거지만 어쩌면 저렇게 더럽게 하고 살았을까...
난민같을까봐 걱정을 했는데
오늘 잠깐 가보니까 확 깔끔해져 있다
싸구려일망정 장판도 깔고 도배도 하고
변기가 너무 더러워서 제일 싼걸로 갈았는데
아저씨가 작업하면서 하소연을 했단다
사모님 더러워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ㅋㅋㅋ;
사진상으로 봤을때 싱크대가 제일 심란했는데 다행히?;;;
죽어라 닦아놨더니 이사를 하다가 그만 폭삭 내려앉았고
그래서 제일 싼 싱크대를 인터넷에서 주문해서
올케가 직접 조립을 했단다
나는 19만원짜리 싱크대가 세상에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낡은 문짝이니 신발장이니 창틀이니
죄다 흰 페인트를 사다가 돈 아끼느라 직접 칠하고 커튼도 달고
낡아빠진 집일망정 처음 생긴 내집이라 애착이 가는 모양이다
동생은 운정신도시에서 작은 음식점을 한다
지난 코로나 유행때 스타벅스에서 터졌던 바로 그 근처다
그때 난 참 되는일이 없는 놈이라고 속상해하는걸 보고
누나로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요즘도 코로나때문에 장사가 너무 안돼 죽겠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집 생각을 하면 힘이 나는가 보다
나는 시골 동네에서는 좀 똑똑한 애였기 때문에
윤세경 동생이라고 피곤한 일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마 [누나는 그렇게 똑똑한데 너는 왜?] 소리를 많이 들었나 본데
당하는 쪽은 무척 피곤했을 것이다
집에서도 삼남매 중 내가 제일 똑똑하니 나에게 지원을 해줬고
나는 기억도 안 나는 일인데 동생 말로는
어릴 때 그렇게 갖고 싶었던 본인 운동화는 안사주고
누나 피아노는 사줬다고 한다
그놈의 피아노가 평생 발목을 잡는 바람에
그 후로 내가 가게 차릴 때도 도와주고 그랬다
솔직히 내가 아무리 잘 살아도
본인이 한량 같으면 한심해서 안 도와줬을 건데
동생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사는 녀석이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매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저녁부터 새벽 늦게까지 가게를 지킨다
새벽 늦게 있을지도 모르는 주문 전화 한통을 기다리며...
집을 사면서 동생은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을 것이다
계약하고 나서 금세 시세가 오르는 바람에
매도자 심술을 받아내느라 마음고생 오지게 한 끝에
겨우 받아든 등기증에 쓰여있는 제 이름 석자를 보고 마음 뿌듯했을 것이고
전세난과 폭등으로 난리가 난 시장을 보며
아 그래도 이제는 내 가족 편히 쉴 집 한칸이 있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이고
한편으로는 은행에 누나돈에 빚투성이인 걸 떠올리고
가슴 한켠이 묵직할 것이고
또 그 빚의 무게가 되려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정부가 그토록 좋다고 선전하는 삐까뻔쩍한 임대주택보다
다 쓰러져가는 내 집이 훨씬 아름답다는 것도....
집을 사면서 직접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겪고 느껴서인지
이제는 더 이상 정부 옹호하는 소리는 안하는데
그걸 보면 왜 이 정부가 국민들이 집을 가지는 걸
그토록 발작 수준으로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그저 평생 임대나 살게 만들어야 표밭 지키는 일이 되는 것이다 ㅋ
임대주택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임대주택도 당연히 꼭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그러나 부디 대통령 온다고 밤새 작업해서
쇼룸같이 이쁘게 꾸며놓은 임대주택 시찰하면서도
그 뒤에 숨은 애환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윗분들이 가지셨으면 한다
과연 임대주택 들어가는 사람들 중 얼마 정도가 이 정도 평수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들에게 이 정도 인테리어를 할 돈은 있을까?
꾸며 놨으니 보기좋긴 한데 이러면 도대체 짐은 어디로 들어가야할까?
하는 것들...
물론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분들이
이 정도 집이면 애 둘도 키우겠다는 소리를 했을 리 만무하지만...
세종시에 산다는 그 38세 가장은 지금쯤 집을 샀을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 글을 쓴 것이 6월의 일인데
그 후로 세종시가 일약 고귀한 도시도 되었고
기타등등 여러가지 이슈로 폭등을 했으니
그때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심정이 걸레짝이 되어 있을 텐데
혹시나 아직도 무주택 상태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싶다
제발 좀 라이트하우스 끊고 아포유 보라고
인생 망치는 거 한순간이라고...
하여튼 동생이 집을 사서 이제 오랜 마음의 짐을 덜은 것 같다
부디 재개발이 차질없이 잘 진행되어
동생이 새 집에서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살아온 내 동생아
내집 마련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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